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크 마크도날 (문단 편집) === 나폴레옹 휘하에서의 활약 === 그는 군대를 지휘하는 일 없이 1809년까지 쭉 백수생활을 하다가 나폴레옹이 그에게 자신의 양아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 이 사람은 이탈리아 왕국의 부왕이 되었다.]의 군사 고문을 맡김과 동시에 이탈리아 군단 지휘관도 맡겼다.[* 이때 워낙 급하게 오는 바람에 군복도 없어서 옛날 국민군 시절 입었던 군복을 입고 와야만 했다. 금술과 치렁치렁한 장식들로 치장된 제복을 입은 다른 장군들 사이에서 낡고 수수한 차림을 한 그의 모습은 유독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군대를 이끌고 나폴레옹에게 합류했다. [[바그람 전투]]에서는 지난 전투로 인해 지친 다른 프랑스군들을 대신해 오스트리아군의 중심을 타격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때 그는 [[凸]] 모양의 거대한 대형을 짜서 공격을 가했다. 전투 자체는 난타전에 가까웠으나 그의 부대는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했고, 오스트리아군은 이 공세를 겨우 막아내는데 힘을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마크도날은 바그람 전투의 승전에 일조했다. 그 동안 부하들이 벌인 삽질행보에 질려있었던 나폴레옹은 마크도날의 활약이 마음에 들었는지 직접 찾아가 그를 끌어안으며 '''그 자리에서 원수로 임명시켜 주었고''', 나폴리의 타란토 공작 작위까지 주었다. 1810년 마크도날은 반도전쟁에서 군대를 지휘했고, 1812년에는 대육군의 좌익을 맡아 러시아로 진군했다. 1813년에는 뤼첸과 바우첸 전투에서 일익을 담당했으며, 슐레지엔으로 쳐들어 갈 것을 명령받았다. 마크도날은 명령을 수행하여 슐레지엔으로 쳐들어갔고, 거기서 증오스러운 프랑스 원쑤들을 기다리던 [[블뤼허]]에게 걸려서 1만5천의 사상자를 내고 패주했다.(카츠바흐 전투) 같은 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그는 리베르트볼크비츠에서 요한 폰 클레나우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제4군단에게 공격받자, 마을을 거점으로 삼아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음날 오스트리아 주력부대의 측면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눈치챈 클레나우에게 걸려서 역관광당했다. 라이프치히 전투가 끝난 뒤,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원수와 함께 철수하는 아군을 방어할 것을 명령받았다. 마크도날과 포니아토프스키는 적의 추격을 막기 위해 다리위에서 전투를 개시했고, 결국 패배하자 둘은 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가려 했다. 마크도날은 살아 남아 엘스터까지 헤엄치는데 성공했으나 포니아토프스키는 그대로 물에 빠져 죽었다. 1814년 나폴레옹이 최후의 시도로 프랑스 방어전을 펼칠 때였다. 그러나 마크도날도 지속되는 전쟁에 지쳤는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고, 분노한 나폴레옹은 그를 좌천시켰으나 그가 직접 황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폐하, 전 저의 오랜 직업을 잊지 않았습니다. 총을 잡겠습니다. 근위대의 서열에서 폐하를 지키겠습니다"''' 이에 감동받은 나폴레옹은 그에게 근위대를 맡겼고 마크도날은 드디어 제정신을 차리고 실력발휘를 하였으나... 이미 기운 대세를 뒤집을 순 없었다. 나중에 [[오귀스트 마르몽|마르몽]]과 [[미셸 네|네]]를 위시한 다른 원수들이 나폴레옹을 배신하고 윽박지를 때도 마크도날은 나폴레옹의 곁을 지켰으며 나폴레옹이 퇴위되었을 때 나폴레옹은 마크도날에게 그의 퇴위 소식을 파리로 전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는 나폴레옹으로부터 자신의 충성을 부르봉 왕가에 바칠 것을 명령받았고, 또, 여태까지의 충성심을 인정받아 무라드 베이의 사브르를 선물 받았다. 왕정복고가 일어난 뒤, 마크도날은 프랑스 귀족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생 루이 왕립기사단의 기사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815년의 백일천하 때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그는 그것을 1831년까지 달고 있었다. 1816년 근위대의 소장이 되었고, 1814년의 헌장으로 그는 귀족원의 일원이 되었다. 1830년 이후로는 은퇴하여 쿠르셀레슬-루아 혹은 센-에토와즈[* 지금의 볼리외 쉬르 루아르Beaulieu-sur-Loire로 추정된다고 한다.]에서 쭉 살았으며, 1840년 9월 7일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분류:프랑스 제국 원수]][[분류:프랑스의 공작]][[분류:프랑스의 남성 정치인]][[분류:스코틀랜드계 프랑스인]][[분류:1765년 출생]][[분류:1840년 사망]][[분류:아르덴 출신 인물]][[분류:페르 라셰즈 묘지 안장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